음양오행(陰陽五行)에 대하여

2020. 3. 25. 13:57사주명리학/음양오행(陰暘五行)

기원전 전국시대 제나라의 추연(鄒衍 또는 騶衍, BC305~240)이

음양이원론과 오행사상을 합쳐 음양오행사상으로 구축하였다.

 

추연은 제자백가 중 음양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맹자보다 조금 뒤의 사람이다.

제나라는 미신, 주술, 신비 사상이 강한 곳이었다.

 

'사기'를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은

"음양오행에 순응하는 사람은 흥하고 그것을 거스르는 자는 죽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라고 하였다.

 

이는 음양오행이 절대적인 사상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현대에도 음양오행을 절대적인 사상으로 볼 수 없으며,

음양오행을 많이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음양오행 또한 오랜 역사 속에 학문으로 발전해왔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음양 오행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음(陰) 양(陽)

어둠
차가움
구름이 해를 가림
뒤쪽, 이면, 산의 북쪽

밝음, 높음
따뜻함
해가 땅 위에 있음
앞쪽, 표면, 강의 남쪽

 

음양오행은 기원전 700년전 시서역경에 기록되면서 집필되었다.

특히, 서경 '상서' 중 감서에

"유호씨는 오행을 업신여기고, 삼정을 태만히 하였다."

라고 최초로 기록되었다.

 

음양오행을 비판한 기록도 있다.

순자苟子의  '비십이자편非十二子篇'에는 자사(子思)와 맹가(孟軻)를 비판하여

"옛날 일들을 살펴 새로운 학설을 만들고 그것을 오행이라 한다. 그 학설이 심히 편벽되어 조리가 없고, 난해하면서도 설명이 없고, 독단적이면서도 해설이 없다. 그 말은 수식하여 공경하면서 이것이 바로 선대 군자들의 말이다. 라고 하니 자사가 주창하고 맹가가 화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