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명리학을 언제부터 사용하였을까?

2020. 3. 23. 13:17사주명리학/기본

 

우리나라 사주명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적혀 있고 내용은 아래와 같다.

태종(太宗)의 모친인 신의황후 한씨((神懿王后韓氏, 1337년 음력 9월 ~ 1391년 음력 9월 23일)가 문성윤(文成允)을 불러 아들 태종의 장래에 대해 물었다. "이 사주는 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므로 점쟁이에게 함부로 물어보지 마소서."

 

이에 명리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말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명리학과 직접 관련이 있는 과거 제도는 태조 원년인 1392년 잡과(雜科)에 음양과(陰陽科)가 편성되면서 부터이다. 정 9품의 명리학 훈도 2명을 두어 명리학에 관한 학문을 가르쳐 합격자를 관상감의 관리로 배속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음양과는 1474년 성종 5년때 일시 빠졌다가 1865년 고종 2년때 폐지될때까지 조선왕조 300여 년 동안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출처 : 한국명리학의 역사적 연구, 구중회 지음, 국학자료원, 2010.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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