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명리학을 언제부터 사용하였을까?
우리나라 사주명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적혀 있고 내용은 아래와 같다. 태종(太宗)의 모친인 신의황후 한씨((神懿王后韓氏, 1337년 음력 9월 ~ 1391년 음력 9월 23일)가 문성윤(文成允)을 불러 아들 태종의 장래에 대해 물었다. "이 사주는 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므로 점쟁이에게 함부로 물어보지 마소서." 이에 명리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말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명리학과 직접 관련이 있는 과거 제도는 태조 원년인 1392년 잡과(雜科)에 음양과(陰陽科)가 편성되면서 부터이다. 정 9품의 명리학 훈도 2명을 두어 명리학에 관한 학문을 가르쳐 합격자를 관상감의 관리로 배속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음양과는 1474년 성종 5년때 일시 빠졌다가 1865년..
2020.03.23